2015. 09. 23.(Wed) 잠실 올림픽 보조경기장
본 조비 내한공연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평일 저녁 8시라 이미 업무로 피곤한 상태에서 보는 스탠딩 공연이고, 또 다음날 출장도 있어 걱정된 상태로 출발. 공연장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막차타고 내려갈 수 있겠지?' '피곤한데 그냥 뒷쪽 지정석으로 할 걸 그랬나' 등 오만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공연이 시작하자 이런 걱정들은 눈녹듯이 사라졌습니다.
1. 무대장치 & 음향 : A
야외공연이고 최근 저녁이면 꽤나 쌀쌀해 걱정했는데 날씨가 정말 쾌청하더군요. 춥지도 않고 땀도 안 나고 공연을 즐기기에 완벽한 날씨였어요. 보조경기장 공연은 2013 시티브레이크에 이어 두번째 오는 거라 딱히 비교대상이 없긴 한데 무대나 음향에서는 특별히 엄청난 것도 아니지만 딱히 부족한 것도 없었습니다. 야외공연이었음을 감안하면 꽤 괜찮았다고 봐야겠죠. 다만 본 조비의 목소리 자체가 예전만 못하기도 하지만 마이크 음량도 좀 작은 것 같더군요. 본 조비의 메인 보컬이 백보컬에 묻혀버릴 정도...ㅠ_ㅠ 메인 무대는 조명 외에 별다른 장치 없이 암벽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커튼만 있어 좀 썰렁하다 싶었는데, 무대 양쪽의 스크린은 이제껏 봐왔던 무대 스크린 중 가장 화질이 좋았습니다.
2. 셋리스트 : A-
물론 You Give Love a Bad Name, It's My Life, Keep the Faith, Livin on Prayer 등 알만한 곡들은 모두 해줬습니다. 멘트나 파트 솔로 등으로 쉬어가는 타임도 없고, 앵콜 요청 받으며 시간 끄는 것도 없이 거의 2~3분만에 속행하는 등 상당히 스트레이트한 진행으로 2시간 20분을 꽉 채워줬으니 엄청나게 충실한 구성을 보여줬고요. 그리고 막판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히든 트랙이 터지며 감동의 도가니... 다만 중반부 & 첫번쨰 앵콜 때 모르는 노래들이 줄창 나오던데 나중에 친구와 얘기해보니 최근 앨범 곡들을 많이 해줬다고 하더군요. 사실 It's My Life가 수록된 Crush 이후 새 앨범 낸 줄도 몰랐는데 정규앨범만 3장이나 더 냈더란... >_<:;
공연 때 히트곡 위주로 하느냐 최신곡 위주로 하느냐는 아티스트의 선택이고 팬들도 호불호가 갈립니다만, 저는 히트곡 위주로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특히 이제 아티스트도 전성기를 지나 팬들과 함께 늙어가는 경우라면 더더욱. 대부분의 팬들은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 온 거지 새로운 곡을 들으러 온 게 아니거든요. 이런 면에서 메탈리카가 정말 최고에요. 전성기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팬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90년대 초반 곡들 위주로 셋리스트를 짜고, 팬들에게 욕먹었던 Saint Anger 앨범 같은 경우에는 아예 단 한 곡도 넣지 않는 패기...=_=b
3. 퍼포먼스 : B
본 조비도 이제 50대인데 몸관리를 굉장히 잘 했더군요. 몸매도 여전히 군살없이 날씬하고, 특히 피부는 It's My Life(이것도 어느새 15년전;;) 시절과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을만큼 매끈매끈. 밴드의 연주력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지구 최강의 백보컬이자 입을 제 2의 악기로 활용했던 리치 샘보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새로운 기타리스트의 백보컬도 수준급이었고요. 무대 위를 미친듯이 뛰어다니며 팬들을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건 아니었지만, 본 조비의 무대 매너에서는 역시 관록이 느껴지더군요. 곡이 끝날 때마다 뒤로 돌아 손을 치켜드는 모습을 카메라로 잡아주는 순간 조명이 꺼지는 연출도 굉장히 멋졌습니다.
...다만 문제는 본 조비의 목소리였습니다...ㅠ_ㅠ 전성기였던 90년대 곡들 대신 최근 곡들을 부른 가장 큰 이유는 더 이상 그 때 곡들을 부를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어요. 하긴 공백을 깨고 It's My Life로 찬란하게 컴백한 Crush 앨범에서도 빡센 고음의 곡들이 전무했고 그 때부터 더 이상 고음 못 부른다는 얘기들이 있었죠. 뭐 밴드 보컬들이 나이를 먹어가며 고음이 더 이상 안 되는 건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성량으로 밀어붙이거나 가성으로 어떻게든 해보는게 일반적인데 본 조비는 고음 뿐 아니라 성량마저 크게 저하...ㅠ_ㅠ 마이크 볼륨이라도 좀 높여놓지 조금이라도 고음 파트에서는 본 조비의 목소리가 백보컬에 묻혀버리더군요. 몸관리는 열심히 한 것 같던데 성대 자체가 약한가봐요. 추억보정 빼고 순수하게 귀로만 평가하자면, 일반인 중 노래 잘 하는 사람 아무나 세워놔도 본 조비와 별 차이 없었을 겁니다...ㅠ_ㅠ
4. 공연 총평 : A+++++
1~3번 점수와 총평의 점수가 상이한데 의아한 분들이 다소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번 본 조비 공연은 최고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가장 재미있었던 공연 중 하나였습니다.
오직 공연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밴드와 팬의 일체감...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부르며 밴드를 응원하는 팬들과 그 팬들의 성원에 답하기 위해 더욱 힘을 내는 밴드의 열정이란 면에서 이번 공연은 최고라고 부를만 했습니다.
최근 곡들이 나올 떄는 당황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아는 90년대 곡들이 나올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를 따라불렀고, 특히 중반에 터진 It's My Life 때 수백명의 팬들이 직접 준비한 손피켓을 펼쳐들던 모습은 본 조비마저 감동시켰죠. 자신을 향해있던 카메라를 돌려세워 팬들의 모습을 찍고 눈물마저 글썽이더군요. 무대 인사 때 본 조비의 웃는 모습은 의례적인 게 아니라 정말로 즐거워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이 감동 덕분인지 공연 마지막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대 인사를 마치고 내려가 다들 공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순간 본 조비가 다시 올라와 "씨발, 오늘 엄청 많이 불렀잖아"라며 투덜대더니(Mother fucking 외에 정확한 워딩인 기억이 안 나네요;; 다만 진짜 욕한 건 아니고 그냥 거친 농담 뉘앙스) 셋리스트에도 없던 Always의 전주가 흘러나왔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노래는 참 못 불렀습니다...>_<:; 본 조비의 전성기 때조차 라이브에서는 힘에 부쳐하던 노래이고 최근엔 거의 안 부르던 노래인데, 2시간도 넘는 공연을 했던 목으로 제대로 부를 수 있을리가 없죠. 본 조비 본인조차 부르다가 고음이 하도 안 되니까 민망했던지 웃으며 마이크를 팬들에게 넘기더군요. 하지만 팬들은 엄청난 떼창으로 이를 화답했고, 이 장면은 결국 이번 공연의 가장 감동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가 비록 내 기억 속의 모습은 더 이상 아닐지라도, 내 추억의 스타와 내가 한 자리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니까요.
그다지 본 조비의 팬이라고 볼 수 없고, 전성기 타이틀곡이나 좀 들어봤던 저도 그 순간엔 눈물이 찔끔 나려 할 정도였으니, 오랫동안 본 조비를 기다려왔던 진짜 팬들의 감동은 저보다 훨씬 컸겠죠. 공연 끝나고 나가는 길에도 아직 정리중인 머천다이즈 샵에서 Always가 흘러나오니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따라부르며 지나가더군요.
아래부터는 사진입니다. 사실 사진은 별로 없어요. 원래 콘서트 가면 최대한 많이 찍어 추억으로 남기겠다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 편인데, 이번 공연은 이상하게 그런 절박함이 안 들더군요. 어쩌면 평일에 일 끝내고 상경하다보니 피곤해서였는지도...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이번 공연을 더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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