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라는 긴 제목은 제임스 서버의 단편소설에서 온 것입니다. 원작소설은 16페이지에 불과한 콩트지만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소설 중 하나라고 합니다. 거센 폭풍우와 악전고투하며 거대한 파도를 향해 배를 몰아가던 용감무쌍한 미티 선장이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오는 여자 목소리에 돌아보는데, 그 소리는 속도 좀 줄이라며 외치는 아내의 목소리였고 미티 선장의 위험천만한 항해는 사실 아내와 함께 마트에 장보러 가는 동안 운전석에서 했던 망상이었다는 내용이죠. 어찌보면 허무한 내용이지만 일상에 치여 무기력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상상 속에선 위대한 모험과 영웅을 꿈꾸는 현대인의 모습을 위트있게 묘사했고, 주인공 '월터 미티'는 몽상가의 대명사 격으로 호칭될만큼 매우 유명한 캐릭터라고 합니다.
이 유명한 원작소설을 벤 스틸러가 감독/주연을 맡아 영화화한 것이 본 영화입니다. 원작소설도 있고 1947년 이미 한번 영화화된 적도 있는 작품이지만, 사실 원작 자체가 워낙 짧은지라 세 개의 작품은 모두 개별적인 작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옳습니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주인공의 이름이 '월터 미티'라는 것과 그가 몽상가라는 것 뿐이죠.
무기력한 일상에 갇힌 채 모험을 꿈꾸는 현대인의 모습을 시니컬하게 그려낸 원작소설, 슬랩스틱이 가미된 유쾌한 코미디 영화였던 47년작에 차별성을 갖기 위해 2013년작이 들고 나온 것은 1936년 창간되어 2007년 폐간까지 포토 저널리즘의 최일선에서 사진잡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Life' 지입니다. 라이프 지는 70여년의 역사 동안 세계의 유명 정치가, 사업가, 과학자, 문화 예술 관련자까지 수많은 인물들과 주요 사건을 사진으로 담아냈으며, 영화에도 등장하는 존 F 케네디, 존 레논, 마틴 루터 킹 외에도 마하트마 간디, 아돌프 히틀러, 마릴린 먼로, 어네스트 헤밍웨이 등이 표지모델로 출연했고 심지어 백범 김구의 사진이 실린 적도 있다고 합니다. 본 영화에서는 주인공 월터 미티가 폐간을 앞둔 라이프 잡지사의 직원으로 나오며, 이를 통해 영화는 월터 미티의 몽상 뿐 아니라 사진에 대한, 더 나아가 사라져가는 아날로그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또 원제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의 'Life'는 '삶'이란 뜻과 라이프 지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게 되고요.
잠시 영화의 내용을 살피면, 주인공 월터 미티는 상상 속에서는 불타는 건물 안에 뛰어들어 강아지를 구출하는 슈퍼 히어로, 극한의 도전을 즐기는 위대한 모험가지만, 실제로는 직장 동료에게 말붙일 용기도 내지 못해 온라인 채팅사이트에서 윙크나 보내는 소심한 인물입니다. 16년 동안 근무했던 그의 직장 라이프 지는 폐간 및 온라인 사이트로의 재편을 앞두고 있는데, 이는 아날로그 카메라의 필름을 현상하는 역할을 맡은 그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위기죠. 폐간을 앞둔 라이프 지에 아직까지 아날로그를 고집하며 극한의 환경에서 포토 저널리즘을 구현하던 전설의 사진가 숀 오코넬이 필름을 보내오고, 월터 미티에게는 라이프 지의 마지막 호 커버에 실릴 그의 사진을 현상하는 막중한 임무가 맡겨집니다. 그러나 오코넬이 커버 사진으로 부탁한, 스스로 자신의 인생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한 25번 사진이 실종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해고 위기에 처한 월터 미티는 숀 오코넬을 찾아 25번 사진의 행방을 묻기 위해, 얼마 안 되는 단서들을 모아 무작정 그린란드로 떠나게 됩니다.
숀 오코넬을 찾기 위한 월터 미티의 여정은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 아프가니스탄, 히말라야로 이어지게 되고 이 과정 속에서 그는 술취한 조종사가 모는 헬기에서 바다로 뛰어들기, 차가운 북극해에서 상어와 싸우기, 자전거+스케이트보드+두 발로 화산을 향해 17km 달리기, 히말라야 등정 등 상상도 하지 못했던 엄청난 모험을 겪게 됩니다. 상상 속에서만 위대한 도전과 모험을 꿈꾸고 현실에선 무기력하기 그지없던 몽상가가 진짜 모험가로 거듭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 여정은 세계 각지의 스펙터클한 풍경과 어우러지며 그 자체로도 훌륭한 로드 무비이고, 현실에 치여 자신의 꿈을 접어야 했던 한 남자가 거대한 모험 속에서 자아를 되찾는 성장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아름답고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월터의 몽상과 현실을 오가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연출도 재미있고, 코미디에 일가견이 있는 벤 스틸러답게 매트릭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 깨알같은 패러디 장면들도 웃음을 줍니다. Of a Man and a Monster의 'Dirty Paws', 데이비드 보위의 'Space Oddity' 등 빼어난 음악과 함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도 인상적이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작품의 주제를 대변하는, 극중 라이프 지의 모토입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표이다."
이 영화는 꿈을 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라고 말합니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음가는대로 일단 한 번 질러보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라고요. 왠지 영화를 보고 나면 저도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영화에요.
p.s.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라는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긴 좀 어려웠겠지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제목은 좀 영화의 성격과 동떨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제목만 봤을 때는 이 영화가 '브루스 올마이티' 같은 영화인 줄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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