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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메이션

초(민망한) 능력자들(The Men Who Stare At Goats, 2009)

 

 

 

이전 포스트에서 "겁나는 여친의 완벽한 비밀(원제 : My Super Ex-Girl Friend)"를 형편없는 번안 제목 때문에 부당한 평가를 받은 영화로 꼽았는데, 사실 이 영화에 비하면 양반이다. "초(민망한) 능력자들"?? 이 무슨 유치찬란하고 민망하며 싸구려틱한 제목이란 말인가? 그것도 굉장히 멋진 원제 "The Men Who Stare At Goats"를 두고 말이다. 그냥 직역해서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로만 했어도 훨씬 나았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제목 "Ghost"를 "사랑과 영혼"으로 멋들어지게 번안해 원작의 느낌을 더욱 살린 경우도 있는가 하면, 이런 쓰레기같은 번안 제목으로 영화의 이미지를 망쳐놓는 경우도 있다...-_-+

 

제목에 대한 불평은 각설하고, 이만 영화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겠다.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은 론 존슨이 쓴 동명의 논픽션 취재기를 바탕으로 한다. 이 취재기는 미 육군이 냉전시절 '제다이'로 불리는 초능력부대를 양성하여 벽 통과하기, 시선으로 염소 죽이기(제목은 바로 여기서 온 것이다) 등 황당하고 기괴한 능력들을 실제로 훈련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뭐 나치도 오컬트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또 5-60년대는 핵만능주의 시절이라 일개 함대를 일격에 쓸어버리는 핵어뢰, 적의 폭격전대를 저지하기 위한 핵방공포 등 무시무시하고도 황당한 무기들을 실제로 계획했다는 등 가장 현실적일 것 같은 군에서도 웃지못할 바보짓을 많이 한다는 건 이미 밝혀진 바이지만, 이 초능력부대는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을만한 코미디이다. 시선으로 염소를 죽이기 위해 사력을 다해 염소를 노려보는 진지한 표정의 군인들... 게다가 이게 막대한 세금을 들여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정말 소가 웃을 일 아닌가? 영국인 론 존슨이 쓴 취재기는 당연하게도 미 육군의 이 민망하기까지한 넌센스를 신랄하게 까발리며 '멍청한 미국인들'을 조롱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하지만 영화는 미 육군의 바보짓을 신랄하게 까대는 원작을 따르는 대신, 같은 소재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길을 걷는다. 물론 이 영화에서도 자칭 전직 제다이 린 캐서디(조지 클루니)와 빌 장고(제프 브리지스)가 보여주는 자칭 초능력은 참 실제로 확인하기 어려운 것들이며 어처구니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들을 멍청이라 비웃는 대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냉전과 마초주의에 물든 그 삭막했던 시절 더군다나 군대에서, 초능력 훈련이라는 구실 아래 계급과 규율을 무시하고, 머리도 마음껏 기르고, 심지어 명상에 도움이 된다며 LSD까지 탐닉하며 가족처럼 지냈던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히피족이다. 냉전의 삭막했던 시절 군에서 비밀리에 개발한 최종병기가 바로 전쟁과 가장 거리가 먼 히피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자 넌센스이며, 또 거대한 농담이다. 영화에서의 그들은 더 이상 웃음거리가 아니라, 가장 평화로운 방법으로 가장 무섭고도 거대한 적... 바로 억압적인 시대와 맞서싸웠던 용감한 돈키호테이며 진정한 제다이 전사들이다. 영화의 후반부 이라크 미군기지 한복판에서 그 웃기지도 않은 제다이 프로젝트가 다시 시동을 거는 모습은 테러라는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또한번 찾아온 냉전시대에 대한 풍자지만, 주인공들이 식수에 LSD를 풀어 부대 전체를 도원향에 빠뜨림으로서 잠시나마 이 냉전을 종식시킨다. 몽롱한 정신 속에 잠시 총을 내려놓고 모두 함께 즐겁게 떠들며 뛰어노는 모습... 이야말로 냉전시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평화가 아닌가? 그리고 폭력 없이도 이런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자들이라면,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제다이 전사들이 아니겠는가?

 

사실 이 영화는 특수부대에 대한 영화도, 초능력에 대한 영화도 아니다. 어찌 보면 코미디도 아니다.(뭐 냉전이 낳은 웃지못할 부산물인 제다이를 통해 시대 자체를 거대한 농담으로 풍자하긴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 히피에 관한 영화이며, 히피 정신에 대한 찬가이다. 사람들은 히피가 지나치게 나이브하고 퇴폐적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인종을 넘어 다 같이 평화롭게 웃고 즐기자던 플라워 무브먼트와 힘의 대결을 추구하며 내부결속을 강조했던 냉전시대의 억압적인 분위기 중 과연 무엇이 더 해로운 것이었을까? 영화는 히피가 틀리지도 실패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또다시 찾아오려는 냉전의 암울한 그림자에 맞서 우리에게 또 한번 히피가 되라고 말한다. 그리고 영화속 마지막 장면의 밥 윌튼(이완 맥그리거)처럼, 난 제다이를 믿는다. 총이 아닌 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는데, 어찌 사람이 한낱 벽 따위를 통과하지 못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