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말랑한 영화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씩 예외인 경우도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예외 중 하나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정말 몇 안 되는 로맨틱 코미디 중 하나...
통산 2,0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80년대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꽃미남 팝밴드 PoP!의 멤버였던 알렉스 플레쳐(휴 그랜트). 밴드의 리드 싱어였던 콜린 톰슨이 함께 작곡했던 3곡을 들고는 밴드를 탈퇴해 솔로로 전향한 뒤 더욱 크게 성공(앨범도 대히트, 영화배우로도 성공, 자기 이름을 딴 향수에 무려 기사 작위까지;;)한데 비해, 밴드의 2인자이자 밴드 시절 콜린만큼이나 인기있었던 알렉스는 배신감을 술과 마약으로 달래며 허송세월하다 솔로 앨범 하나를 말아먹고 잊혀진 가수가 되어버립니다.
새로운 작곡도 10년 째 손놓은 채 동창회, 지역축제, 테마파크, 유람선 공연 등 행사장을 전전하며 POP! 시절 추억팔이로 연명하고 있고, 80년대에는 잘 나갔지만 지금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왕년의 스타들에게 복싱대결을 시켜 희화화시키는 프로그램에서 섭외요청받는 신세에 이르죠.
하지만 이 한물간 스타에게 기회가 찾아오는데, 현재 샤키라나 비욘세만큼이나 인기있는 최고의 영 디바 코라 콜먼이 어린시절 그의 팬이었다며 듀엣곡을 작곡해달라고 의뢰한 거죠. 서서히 잊혀져가는 초라한 몰락만을 앞두고 있다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절호의 컴백 찬스를 눈앞에 둔 알렉스는 촉박한 기한에도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뛰어들지만, 작곡도 손놓은지 오래인데다 PoP! 시절에도 작사는 콜린이 전담하여 제대로 작사를 해본적이 없는 탓에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이틀간 자신의 집에 화초관리 대타로 들어온 부산스러운 아가씨 소피 피셔(드류 배리모어)에게 뜻밖에도 굉장한 글쓰기 감각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녀에게 작사를 해달라고 부탁하게 됩니다.
그리고 플레쳐의 간절한 부탁 끝에 이 한물간 왕년의 톱스타와 꽤나 정신사나운 문학지망생 아가씨는 코라 콜먼의 신곡 'Way Back into Love'를 위해 힘을 합칩니다.
이후의 진행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릅니다. 두 남녀는 티격태격하며 서로를 알아가고, 점점 가까워지고 후반에는 큰 위기가 찾아오지만 결국 사랑으로 극복해내죠. 하지만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배우들과 음악입니다.
알렉스 플레쳐 역을 맡은 휴 그랜트는 이 영화의 매력의 반 이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월을 무색케 하는 꽃미모를 자랑하는,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허당처럼 보이는 점이 더욱 매력적인 이 옥스포드대 출신 영국 아저씨가 연기하는 알렉스 플레쳐의 캐릭터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소피에게 자신의 처참하게 실패한 솔로앨범으로 자학개그 하는 모습이 참 소탈하면서도, 이면의 서글픔을 굳이 숨기지 않는 소심함은 휴 그랜트 특유의 사슴같은 눈망울과 어우러져 안쓰럽습니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아줌마 팬덤을 제외하면 주위 모두로부터 퇴물취급을 받는 처지를 슬퍼하면서도 이번 신곡이 잘 되면 행사섭외가 밀려들어 디즈니 랜드에서 공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좋아하는 모습은 그 소박함이 귀엽기까지 합니다.(이 아저씨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귀여우신 거야;;) 영화 처음 등장하는, 80년대 특유의 약간 과장된 느낌과 보이밴드다운 느끼함이 잘 살아있는 PoP! 시절 뮤직비디오에서 골반을 튕기는 동작으로 유명한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 일명 '팝 댄스'를 추는 휴 그랜트의 모습은 닭살과 포복절도를 유발합니다.(뭐 휴 그랜트의 꽃미모를 좋아하는 여성분들이라면 환호성을 지르실지도;;) 휴 그랜트 특유의 뺀질거리고 허세부리지만 실상은 소심한 캐릭터가 아주 제대로 들어맞는 느낌입니다.
깨나 부산스럽지만 또 굉장히 옹고집도 있고, 내면엔 굉장히 여린 면모도 간직한 소피 피셔 역의 드류 배리모어 역시 굉장히 예쁘고 사랑스럽습니다. 작품마다 기복이 심하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통통 튀는 그녀의 매력을 잘 살려낸 영화에서의 드류 배리모어는 정말로 예뻐요. '첫키스만 50번째'에서 그동안 잘 몰랐던 드류 배리모어의 매력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는데, 이 작품에서도 이리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니까 그녀에겐 어쩌면 로맨틱 코미디가 천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든 두 배우들의 호흡도 굉장히 좋고, 둘 다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꽃미모를 간직한 탓인지 나이 먹을대로 먹은 아저씨와 어리다고 볼 수 없는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인데도 꽤나 달콤하고 풋풋한 느낌마저 듭니다.
두 배우 외에도 눈에 띄는 것은 코라 콜먼 역을 맡은 헤일리 베넷입니다. 청순함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얼굴과 예쁜 몸매, 원래 가수를 준비하던 아가씨답게 빼어난 춤과 노래실력까지 정말 나오는 장면마다 눈이 즐겁습니다. 나이도 어려 굉장히 기대되는 신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의 행보는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해 좀 아쉽습니다. 어쨌든 본작에서는 머리에 든 거 별로 없고 허영끼도 다분하며 톱스타라는 콧대를 세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로맨틱하고 소녀다운 구석이 있는 당대 최고의 디바 코라 콜먼 역을 굉장히 어울리게 연기합니다. 콘서트 장면에서의 섹시한 공연은 굉장히 도발적이고요.
그리고 작사 작곡을 소재로 한 영화 답게 영화 내내 굉장히 많은 음악들이 나오고 또 하나같이 좋습니다. 특히 힘을 빼고 부르는 휴 그랜트의 목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감미롭습니다. 실제로는 악기 하나 다룰 줄도 모르고 음치 기질도 약간 있어 영화 찍으며 고생 깨나 했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노래마저 이리 잘 부르다니...ㅠ_ㅠ 아니, 기술적으로 잘부르는 건 아닌데 목소리 자체가 워낙 부드럽고 좋아요.
80년대 특유의 화려함과 느끼함이 잘 살아있는 PoP!의 대표곡 'PoP! Goes My Heart', 그리고 굉장히 감미로운 발라드 곡 'Meaningless Kiss'와 데이트 음악으로 굉장히 좋을 것 같은 'Dance with Me Tonight', 그리고 알렉스가 콘서트에서 소피에게 바치는 노래인 'Don't Write Me Off' 그리고 영화의 대표곡 'Way Back into Love'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노래들이 좋습니다. 가끔은 영화 O.S.T.라는게 아쉬울 정도에요.
예쁘고 사랑스러운 영화입니다. 캐릭터들도 사랑스럽고 영상도 괜찮고 무엇보다 음악이 굉장히 좋아요. 음악과 관련된 영화다보니 가끔 음악씬과 관련된 언급이나 패러디가 있어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하고요. 심각한 기분을 풀어내고 좀 더 유쾌해지고 싶을 때 보면 좋을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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