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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메이션

돌아가는 펭귄드럼(Mawaru Penguin Drum, 2011)




2000년대 이후 재패니메이션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쇠퇴'일 것입니다. 80년대 제작자의 혼을 갈아넣은 무지막지한 퀄리티의 극장판 & OVA 시절도 끝나고, 90년대 애니메이션을 넘어 하나의 거대한 문화현상으로까지 발전했던 '에반게리온'이나 TV의 수준을 아득히 초월한 작화&음악을 선보였던 '카우보이 비밥', 소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일련의 용자물 시리즈마저 끝나버린 뒤, 주제의식 뿐 아니라 작화조차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범작들만 난무했죠. 

특히 2010년대 이후로는 덕후들을 노린 하렘물 & 미소녀 동물원 장르가 범람하고, 더 나아가 직접적인 삽입 장면만 없을 뿐 야애니나 다름없는 녀석들까지 버젓이 공중파에서 방영되는 지경에 이르며 오타쿠에 대한 인식은 더욱 나빠지죠.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재패니메이션계를 지탱한 것은 '케이-온'으로 대표되는 일련의 쿄애니 작품들었습니다. 깔끔한 작화와 귀여운 캐릭터, 폭력이나 야한 것 없이도 소소한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주며 덕후들 뿐 아니라 일반 팬들, 특히 여성층의 많은 지지를 얻었죠. 예전부터 이런 '일상물'이나 '치유물' 장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케이온 이후 약진이 두드러지며 메인스트림에 자리했죠. 

어떻게든 여캐들 벗겨먹고 팬티나 보여줘서 덕후들에게 캐릭터 상품과 BD 팔아먹겠다는 녀석들보다 쿄애니의 작품들이 훨씬 낫다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지나치게 연성화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다보니 8,90년대 나름대로 치열한 고민과 주제의식을 가졌던 작품이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2010년대 주목해야 할 작품들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이고, 또 하나는 지금 소개하려는 '돌아가는 펭귄드럼'입니다. 


2011년 3분기 24화로 방영된 '돌아가는 펭귄드럼'은 도무지 의미조차 짐작되지 않는 기묘한 제목과 '옴 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테러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흥미로운 배경, 굉장히 탐미적인 성향을 가진 호시노 릴리의 원화, '소녀혁명 우테나'로 유명한 이쿠하라 쿠니히코의 감독 복귀작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순정만화 팬이 아니고, 애니판 '소녀혁명 우테나'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쿠니히코 감독 얘기는 패스;; 제가 이 양반에 대해 아는 건 '소녀혁명 우테나'의 몇몇 병맛개그 에피소드에서 아스트랄한 센스를 보여줬다는 것 정도입니다;) 특히 1편 후반 압도적이기까지 한 '세이존~ 센라쿠~!!(생존전략)' 장면에서는 '도대체 뭔진 모르겠지만 이건 틀림없이 명작의 스멜이다!'라며 애니덕후들이 크게 술렁이기도 했죠.


하지만 중반까지 떡밥만 잔뜩 뿌려대고 도무지 회수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다가 메인스토리는 제껴놓은 채 기이할만큼 링고의 변태적인 스토킹 행각 + 뜬금없는 개그에 집중하는 난잡한 전개 때문에 시청자 상당수가 중도탈락했고, 후반부에는 온갖 새로운 떡밥과 암시들이 회수되고 또 뿌려지며(결국 회수된 건 절반 정도;;) 너무나도 폭풍처럼 몰아치는 전개로 그나마 남아있던 시청자마저 당황시킨 채 별다른 인기를 끌지 못하고 종영했습니다. 저도 종영된 뒤 입소문 듣고 한번에 몰아봤으니 재미있게 봤지 매주 한편씩 기다리며 봤다면 중반부에 때려치고 나왔을 거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는 펭귄드럼'은 제 기준에서 2010년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할 애니메이션 중 하나입니다. 사실, 매우 불친절한 애니메이션입니다. '에반게리온'처럼 굉장히 복잡한 설정을 숨겨두어 덕후들의 탐구욕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짝살짝 암시만 주다가 결국엔 아무 설명없이 슥 지나가버리는, 그냥 불친절한 애니메이션이죠. 그럼에도 이 불친절함은 그리 큰 단점이 아닙니다. 호시노 루리의 비현실적이리만큼 탐미적인 작화와 이쿠하라 쿠니히코의 화려한 연출이 만나는 순간, 이런 불친절함마저 잔혹동화의 한 부분으로 녹아들거든요. 


예, 이 작품은 동화입니다. 아주 슬프고도 잔혹한 동화죠. 전 '빨간 두건' 이야기를 읽으면서 왜 소녀가 10년 씩이나 쇠로 만든 옷을 입고 탑에 갇혀있었는지, 왜 엄마를 찾아가려는 소녀의 앞에 놓인 길이 가시밭길과 바늘길 뿐이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엄마를 만나기 위해 쇠옷이 닳아없어지도록 차가운 벽에 긁어댔을 소녀의 모습, 바늘길을 헤치며 발걸음을 옮겼을 소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 한켠이 찡했죠. 이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도 비슷합니다. 온갖 비현실적인 설정들이 나오고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조차 없지만(특히 '어린이 브로일러'는 매우 인상적인 장치임에도 암시조차 주어지지 않습니다.), 따지려 드는대신 인물들에 주목하며 마음가는대로 느껴야 하죠. 물론 이조차 쉬운 일은 아닙니다. 주역들이라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초반 쉽게 감정이입이 되는 타입이 아니거든요. 히마리는 병약한 미소녀 스테레오타입의 전형이고, 쇼우마는 착해빠진 시스콘 오빠, 칸바는 근친애 성향마저 엿보이는 위험한 녀석입니다. 히로인 격인 링고는 심각한 변태 스토커고요;; 하지만 떡밥만 뿌려놓고 루즈한 전개에 인물들에게도 도무지 정이 붙지 않는 중반부의 험한 고비를 넘고 나면, 마침내 이 잔혹한 동화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선 펑펑 울어버릴지도 몰라요. 


(여기부터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아직 안 보신 분은 꼭 피해주세요!)




'돌아가는 펭귄드럼'의 주제는 자못 심오합니다. 원죄와 구원, 그리고 희생의 이야기죠.(이렇게 써놓으니 꽤 기독교적인 이야기처럼 들리는군요. 주제와 핵심적인 관련을 가진 물건도 선악과를 상징하는 사과고요).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원죄와 희생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칸바와 쇼우마, 히마리는 타키쿠라 가의 자식들... 10여년 전 지하철 테러사건을 일으켰던 부모의 원죄를 물려받은 아이들이고, 링고와 유리, 타부키는 당시 사건으로 모모코(링고에겐 언니, 타부키와 유리에겐 자신에게 삶을 준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잃은 사람들입니다. 가해자의 자식과 피해자의 가족, 친구들이죠. 나츠메 가문의 마사카 역시 테러사건의 공범이었던 아버지의 원죄 때문에 오빠(칸바)를 빼앗긴 사람입니다. 게다가 타키쿠라 3남매 역시 사실은 친남매가 아닌 남남입니다. 즉 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저주에 의해 이어진 자들이며, 결코 함께 할 수 없는 자들이죠. 


그러나 이들이 서로를 미워하고 탓하는 대신, 용서하고 더 나아가 서로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 하는 순간 저주에 속박된 것처럼 보였던 운명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합니다. 타키쿠라 3남매는 애초부터 구원으로 연결된 관계입니다. 칸바는 철창 속에서 굶주린 채 죽음을 기다리던 쇼우마에게 자신의 사과를 나누어주었고, 쇼우마는 '어린이 브로일러'에 버려진 채 사라질 운명이었던 히마리를 구해 가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이어진 가혹한 운명은 그들에게 형벌이었지만, 자기 자신이 선택하고 감내하기로 한 가장 가치있는 형벌이었죠. 결국 타키쿠라 형제는 자신들과는 아무런 관련없이 부모에게 물려받아야했던 가혹한 원죄로부터 벗어나려 하거나 거부하는 대신, 이를 받아들이고 희생을 통해 속죄함으로써 운명의 굴레를 끊어내고 히마리를, 링고를,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합니다. 칸바가 히마리를 구한 뒤 자신은 산산히 부서져가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이유겠죠.


링고의 변화는 가장 극적입니다. 중반부까지만 해도 도무지 정이 안 가는 변태 스토커에 운명결정론자처럼 보였던 링고지만, 타키쿠라 3남매가 자신의 가족을 앗아간(단순히 모모카의 죽음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언니의 죽음 이후 링고의 남은 가족마저 붕괴되었고 이는 링고의 트라우마로 남게 되죠.) 주범의 자식들이란 걸 알게 된 뒤에도 그들을 미워하는 대신 용서하고, 더 나아가 언니 모모카가 그랬듯이 그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운명을 바꿔보려 하는 모습에선 일종의 숙연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마지막화에서 운명을 바꾸기 위한 주문을 외치는 링고의 처절한 목소리는 매우 기억에 남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은 매우 종교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들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원죄를 기꺼이 뒤집어쓰고,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자들을 구하기 위해 아무런 대가 없는 자기희생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조금이나마 저주받은 운명을 바꾸고, 가장 순수한 희망(히마리)을 세상에 남기죠. 그리고 그들이 바꿔놓은 세상에서 작은 희망은 계속 자라날 것입니다. 



매우 인상적이었던 1화의 히마리 변신(?) 장면. 꽤나 센세이션을 일으켰죠;;



18화 ED로 사용된 '잿빛 수요일'... 제목이었던 '그러니까 날 위해 살아줘'에 이어 이 곡이 이어지던 장면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건 풀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