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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니메이션

화이 : 괴물을 삼킨 아이, 2013


화이를 봤습니다. 개인적으론 굉장히 좋았고 올해 본 영화 중 설국열차, 퍼시픽 림과 함께 톱 3에 랭크. 간단한 감상평입니다.


1. 일단 흥행 만만찮겠다는 걱정이 좀 들었습니다. '지구를 지켜라' 장준환 감독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하드하고 불편한 영화입니다. 고어를 연상케 하는 잔혹한 묘사나 피칠갑 장면도 있고 또 심리적으로도 극한까지 쥐어짜는 영화고요. '깡철이' 같은 신파 액션을 예상했던 사람이나 여진구 멋지게 나온다길래 보러 온 관객들은 기겁할지도...=_=;; '지구를 지켜라'에 이어 2연타로 흥행 실패하면 감독님 다음 작품 어려울 것 같은데 제발 잘 됐으면 좋겠어요...ㅠ_ㅠ 결코 대부분의 관객들이 즐겁게 볼만한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입소문 타기 전에 첫 2주 동안 배우빨, 홍보빨로 300만 정도 뽑아먹길 기원합니다. 


2. 왠지 설정이나 전개에서 하드한 분위기의 일본만화 스타일이란 생각이 들었던 영화입니다. 특히 왠지 모르게 미노루 후루야의 '두더지'와 정서적으로 닿아있다는 느낌... 이건 그냥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3. 김윤석은 '역시 김윤석!'과 '또 김윤석이야?'란 상반된 평가가 동시에 나올 듯 합니다. 최근 영화들에서 너무 똑같은 모습들만 보여주고 있는데, 또 그 역할을 그만큼 잘 수행할만한 배우가 눈에 띄지 않아요. 뭐 이것도 메소드 연기라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참 끝까지 찌질했던 아버지 역할도 썩 잘 어울렸던 것 같은데, 앞으로는 새로운 모습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만 다음 작품인 '해무'에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선장 역할이군요...=_=;; 윤석이형, 가끔은 힘빼고 평범한 역할도 좀 맡아줘요. 


4. 아빠 중 진성(장현성)이란 캐릭터가 참 궁금하고 매력적이었는데 결국 밝혀진 것은 하나도 없이 중도퇴장해버려 참 아쉬웠습니다. 아빠들 중 석태(김윤석)는 그냥 선악을 초월한 괴물이고, 기태(조진웅)은 석태가 따라오라고 하면 찍소리 못하고 따라왔을 위인이고, 범수(박해준)와 동범(김성균)은 석태가 아니었더라도 어차피 칼잡이, 총잡이로 살았을 범죄형 인간들이니 석태 패거리에 속해있는게 퍽 자연스러운데 진성은 도무지 아니거든요. 기태와 함께 가장 따뜻하고, 화이를 자신들과는 달리 올곧게 키우려는 인물이죠. 젊었을 때 뮤지션이었던 것 같은 사진도 있고요. 석태가 진성에게 "너도 처음엔 달랐잖아? 근데 지금은 어때?"라고 묻는 장면에서 주연은 원래 이 범죄 패거리의 일원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어쩌다가 이런 괴물들의 브레인 역할을 맡게 된 걸까요? 샤워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보면 왼팔 전체에 화상의 흔적이 있는데, 뭔가 흥미로운 사연이 있는 상처가 아닐까 싶었지만 결국 밝혀지지 않고 퇴장...=_=; 화이와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화이가 겨눈 총을 잡은 채 스스로 심장 쪽으로 움직이는 장면이 인상적이더군요. 화이가 자신의 친모를 죽인 석태를 죽일 때조차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는 걸 고려하면, 주연의 죽음에서 방아쇠를 당겼던 것은 진성 스스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선택의 의미는 뭐였을까요? 화이에 대한 속죄? 아니면 끝내 화이를 자신들과 다를바 없는 괴물로 만들어버렸다는 회한? 


5. 캐릭터들 중 박실장(유연석)과 동범(김성균) 캐릭터는 좀 전형적인 핵심 권력자 밑에 어두운 일을 맡는 비서, 싸이코 살인마의 클리쉐를 모아놓은 듯 했습니다. 더불어 동범의 죽음에서 '역시 총싸움에 칼을 들고 나오면 안돼...=_='란 걸 실감. 강렬한 느낌에 비해 좀 허무하게 퇴장해버렸죠;; 


6. 보육원시절 석태가 기도하는 장면에서, 교련복 무늬가 모두 글씨로 되어있는 듯 하더군요. 혹시 눈여겨 보신 분 있나요? 


7. 석태와 화이는 모두 괴물에게 고통받습니다. 석태는 스스로 괴물이 됨으로써 괴물을 없애고, 화이는 괴물을 삼켜 극복해내죠. ...그리고 이건 그냥 뻘생각 같긴 한데, 석태를 괴롭히던 괴물의 이미지는 나무뿌리 같은 느낌의 촉수이고, 화이의 괴물은 짐승의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창고에서 화이가 자신의 괴물을 똑바로 노려보며 없애는 장면에서, 그 괴물을 옭아매어 없애는 것은 나무뿌리 같은 촉수죠. 이는 석태의 괴물이 화이의 괴물을 지워냈다는 의미일까요, 아니면 그 촉수괴물이 죄책감이나 인간성을 상징하는 걸까요? 석태가 일말의 인간성마저 없애버린 시점에서 촉수의 괴롭힘을 벗어나고, 화이는 자신이 두려워하던 괴물을 촉수를 이용해 없앤다는 점에서 이 장면도 좀 흥미로웠습니다. 


8. 장준환 감독과 장진 감독이 친분이 있던가요? '화이'란 이름이 낯익어 생각해보니 '간첩 리철진'의 여주인공 이름도 화이군요. 장진 감독이 이 이름을 꽤나 아껴서 '화이가 힘내라고 해주는 게 화이팅이다' 비슷한 인터뷰를 봤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냥 우여의 일치인지 아니면 의미가 있는건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