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판타지 소설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고, 반지의 제왕에 이어 또 하나의 명작 판타지 시리즈인 나니아 연대기가 개봉한다고 들었을 때 매우 흥분했었던 기억이 난다. 결론적으로 나는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의외로 악평이 많다는데 놀랐다;;
그리고 악평의 대다수가 이 영화를 반지의 제왕에 비교함에 있다는데 많은 아쉬움을 느꼈다. 물론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은 비교선상에 놓일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LOTR의 J.R.R. 톨킨과 나니아 연대기의 C.S. 루이스는 동시대의 인물이며, 실제로 절친한 친구였다. 출판 역시 동시대였고 둘 다 판타지의 새로운 시대를 연 명작으로 칭송된다. 이제 영화마저 동시대에 개봉하니 비교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긴 하다. 그러나 이 비교는 핀트가 어긋난 것이며 무의미하다.
반지의 제왕은 말 그대로 대서사시다. 그에 반해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겨울밤 벽난로 가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손주들에게 흔들의자에 걸터앉아 읽어주기 알맞은 동화에 가깝다. 반지의 제왕의 비교대상을 찾는다면 오딧세이나 원탁의 기사들이 알맞으며, 나니아 연대기의 비교대상을 찾는다면 미하엘 엔데의 모모나 오즈의 마법사를 고르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혹은 톨킨이 손주들을 위해 쓴 반지의 제왕의 모태, 호빗이나) 반지의 제왕과 비교하며 나니아 연대기를 무시하는 건 오딧세이를 들어 오즈의 마법사가 유치하다고 비난하는 것과 별 다를게 없다. 만약 원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적어도 반지의 제왕을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니아는 영웅서사시의 구조를 가지고 있고, 또 대규모 전투장면을 동반하고 있긴 하지만 장대한 서사시를 보여주는데 목적이 있진 않다. 나니아 연대기의 진정한 재미라면 (비록 추운 겨울만이 계속되고 있지만)나니아의 환상적인 풍경, 그리고 개성넘치는 외모의 동물 혹은 신화속의 괴수 캐릭터들이다. 나니아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즐겨야 한다. 아이들이 유치해보이기까지 하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말하는 동물인형에조차 얼마나 열광하는지 떠올려보면, 실제와 다름없는 퀄리티로 살아난 나니아의 그 다채로운 생물들에 얼마나 큰 놀라움을 느낄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하나, 완벽하게 독립된 세계관을 구축하며 범세계적인 가치를 담은 반지의 제왕과 달리 애초에 나니아 연대기는 동시대 영국의 아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때문에 나니아 연대기의 구성이나 주제는 매우 서구적이며 또 기독교적이다(그럼에도 종교적 색채가 많이 묻어나오지 않는다는게 미덕이지만). 기독교적 가치관 속에서 생활하고 학교에서 기초라틴어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배우는 그네들이 볼 때 믿음과 자기희생을 통한 부활이라는 매우 기독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스란의 모습이나 사튀로스, 켄타우러스, 유니콘 등 신화속 생물들의 출연, 혹은 뜬금없게까지 느껴지는 산타의 갑작스런 등장에 우리보다 훨씬 더 좋아하고 감동했을 거라는 건 염두에 둬야 한다.
나니아 연대기는 무리없이 원작을 충실하게 스크린에 옮긴 작품이다. 나니아 연대기가 부활시킨 수많은 신화속 생물들은 뛰어난 퀄리티로 스크린을 누비며, 서로 다른 성격에도 결국 가족애로 끈끈하게 뭉치는 4남매의 성장도 무리없이 잘 표현되어있다. 신화의 땅 나니아의 아름다운 모습은 더할나위 없고 클라이맥스라 할만한 후반 전투장면 역시 꽤 긴박감 있고 장대하게 표현되어있다. 아스란의 출현으로 전투 재밌어지던 중 갑자기 끝나버린다는 불평이 있긴 하지만 나니아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지 전쟁소설이 아니며, 나니아에는 분명 기사 로망적인 요소가 있지만 그것이 나니아 연대기의 주된 부분은 아니다. 영화의 전투장면이 용두사미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나마 원작소설에 비해 액션성이 상당히 추가된 거다.
나니아 연대기는 원작을 충실하게 스크린에 옮기며 다섯편의 시리즈(어쩌면 일곱편 - 일단 계획은 5편이지만 나니아 연대기는 총 7편이다) 중 첫 테이프를 무난하게 끊었다. 아, 스포일러지만 나니아 연대기의 다음편엔 이 4남매가 출연하지 않는다. 나니아 연대기가 오즈의 마법사나 해리포터와 가장 다른 점은 연대기의 구조. 나니아 연대기는 특정인물이 아닌 나니아 자체를 다룬다. 즉 1편이 A라는 인물이 나니아에서 겪는 모험이라면 2편은 A가 안 나오는 대신 B가 나니아에서 겪는 새로운 모험을 다루는 구조. 매편 바뀌는 다양한 주인공들과 그럼에도 건재한 몇몇 조연 캐릭터, 편과 편을 이어주는 소품(사실 이야기의 순서로 보면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은 나니아 연대기의 두번째 이야기다. 사자, 마녀, 옷장에서 주인공들이 현실세계로 돌아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가로등은 첫번째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1편의 주인공이 2편에 조연으로 출연해 주인공에게 도움을 주는 등의 독특한 설정은 나니아 연대기의 또다른 재미다.(유명세를 치룬 1편의 배우를 재기용하지 않아도 되니 제작사가 가장 좋아할지도;;)
나니아 연대기가 1편의 무난한 출발 페이스를 유지해 환상적인 나니아의 세계를 지속적으로 선보였으면 한다.
p.s. 겨울의 마녀에게 던진 여우의 한 마디... "무례하긴 싫지만 당신에게 한 말이 아니야." 마녀의 자존심을 사정없이 깔아뭉개는 촌철살인의 포스... 개인적으로 매우 멋진 장면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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